픽션 古Korea Connection -발록저-
   
   
    “저자거리에 무공비급이 난무합니다.”
  민이라 불리는 사내는 자신에게 그동안 무공비급 판매를 맡
  겨 왔던 출팔부의 촌장 관웅을 만나고 있었다.
    “진본인가?”
   다급한 민과는 달리 관웅은 느긋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필사본입니다. 하지만 진본과 똑같습니다. 진본과
  맞추어 보았을 때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건 범죄가 아닌가?”
    “하지만 너무나 많은 필사본 비급이 돌고 있어서…….”
    “어느 정도 인데 그러나?”
    “저자거리의 코흘리개 아이들도 들고 다닐 정도입니다.“
    “큰일이군. 조치를 취해야지.”
    “혈랑무사대를 소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민은 개마국 최고의 무사집단인 혈랑대를 소환하고자 했다.
  민에게 있어서 혈랑무사대는 최후의 수단과도 같은 존재였다.
    “혈랑무사대라면…….”
  관웅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민이 혈랑무사대를 소환
  한다면 이곳 저자거리에는 살아남는 자가 없을 것을 알기
  에…….
    “그렇습니다. 우선 쓸고 보는 놈들이죠.”
  혈랑무사대는 자신의 수하들로 언제나 민의 자부심이었다.
    “그들의 투입은 조금 미루게.”
    “다른 방법이 있으십니까?”
    “판관들을 불러오게.”
  판관은 관웅의 심복들이었다. 백성들 중에 죄지은 자가 있을
  때 변호를 맡아주는 자들로 관웅에게 그들은 엄청난 부를 가져
  다주는 자들이었다.
    “판관들을 말입니까?”
  “그들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혈랑무사대를 불러
  모두를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음…….”
  “망설일 것이 무엇인가! 판관을 시켜 의금부에 직소케 하여
  필사본 비급을 퍼트린 놈들을 압박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벌을 주자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닐세. 다만 경고를 하자는 거지.”
    “음…….”
    잠시 민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망설이는 겐가?”
    “판관들이 요즈음에 너무 돈을 밝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허, 내 심복들을 의심하는 것인가?”
    관웅은 진노한 표정으로 민을 다그쳤다.
    “알겠습니다. 판관들을 부르겠습니다.”
  민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관웅에게 비
  급을 받아 판매를 하는 상단도 유지를 해야 혈랑무사대도 먹여
  살릴 수 있고 자신의 가족들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관웅을
  명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판관들은 들으라.”
    “말씀하십시오.”
  “저자거리에 필사본 비급을 유포한 자들을 의금부에 발고하
  고 그들의 죄를 묻도록 하여라.”
  민에 의해서 불려온 판관들은 관웅 앞에 모여 있었다. 잠시
  민을 나가 있도록 한 관웅은 그들에게 간단명료하게 하명했다.
    “저…….”
    판관들 중 앞에 선자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뭔가?”
  “비급 필사본을 발고하기 위해서는 정본의 작성자가 그 권한
  을 위임해 주어야 합니다.”
  “뭐라? 내가 정본의 발행을 맡고 있는데 내가 지시하면 되지
  않은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국법에 이르기를 필사본의 단속은 비급
  의 원주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법이…….”
  관웅은 잠시 머뭇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판관 조우충, 관웅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 그래! 말해 보게. 조우충!”
    조우충은 관웅이 가장 신임하는 판관 중에 한명이었다.
    “관웅님이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래?”
  “그들 비급의 주인들이 각기 낙오국, 오백국, 천국, 이천국,
  타락국, 만국 등지에 멀리 있어서 모두의 위임을 받기 힘들어서
  가 아니옵니까?”
    “그 문제도 있지.”
    “모두를 물리시면 그 방안을 제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관웅이 한 팔을 휘 내젖자 모든 판관이 물러나갔다.
    “말해 보아라.”
    “우선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조우충은 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겨 관웅 앞으로 다가섰다.
    “무언가?”
  “돈으로 해결 하실 것이옵니까? 아니면 잡아 족칠 것이옵니
  까?”
    “돈으로 해결해 주고 선심을 베풀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합의로 이끌고 싶다는 것이군요.”
    “괜찮지 않은가?”
  “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형부, 언니 자!'라는 처제의 말보다
  더 듣기 좋은 소리 옵니다.”
    조우충의 얼굴에 비굴한 웃음이 번졌다.
  “역시 조우충이군. 굳이 그것을 모든 비급의 주인에게 나누어
  줄 필요가 없으니 좋은 방도를 내놓아 보게.”
    “선 조치이옵니다.”
    “어떻게?”
    관웅은 몸을 바짝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비급의 주인들의 관인을 제작하여 모두 위임장에 찍어서 작
  성한 다음 우선 의금부에 직소를 하는 것이옵니다.”
    “비급의 주인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들 몇몇에게 조금의 전리품을 주어야겠지요.”
    “다른 비급 판매상들은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그들에게도 급박하여 선 조치를 하였다고 전하고 전리품을
  아주 적은 부분이지만 나누어 주는 것이옵니다.”
    “가능할까?”
  “돈을 뺏어 오는 것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옵
  니다.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렇지. 그들도 필사본이 하루 빨리 없어져야 판매가 번창할
  테니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그렇사옵니다.”
  둘은 의견일치를 보고 흡족하게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이
  심전심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시작된 필사본 박멸작전은 너무나 순조롭게 착착 진
  행되어 성과를 보였다.
  판매상들도 비급의 주인들도 관인을 복제하여 위임장이 만들
  어 지고 선 조치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묵시적으로
  그것을 인정하며 우선은 필사본을 박멸하는데 주력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였다.
   
  “개필부의 금천상이 자신의 판관을 필사본 박멸작전에 동원
  하겠다고 합니다.”
  조우충이 관웅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보고하고 있었다.
    “개필부의 금천상이가?”
  개필부는 관웅이 관리하는 출팔부와 항상 마찰이 있어왔던
  인근 지방이었다. 개필부의 수장은 관웅과 견원지간이라 알려진
  금천상이었다.
  “관인을 복제하여 사용한 주인들 중에 일부가 의금부 직소를
  개필부에서 행할 테니 더 이상 출팔부에서는 관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놈이 돈 냄새를 맡은 것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관웅님!”
  관웅과 조우충이 마주하고 있는 곳에 민이 다급하게 뛰어 들
  어왔다.
    “무슨 일인가? 민!”
    “개필부에서 의금부로 직소를 올렸습니다.”
    “무슨 직소? 필사본 불법유포에 대한 직소인가?”
    “아닙니다.”
    “무엇인가?”
  “출팔부의 필사본 직소에 사용된 위임장 관인이 날조되었다
  고 직소를 했습니다.”
    “뭐라?”
    관웅이 놀라 되물었다.
  “합의금을 배당시켜준 비급의 주인 중에 개필부 소속인 비급
  주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배당금을 마다하고 그만…….”
  “이제까지 모두가 그런 식으로 선 조치하고 배당금을 순순히
  받지 않았나?”
  “그것이 관행이긴 합니다만, 배당을 거부하고 저렇게 나오면
  일이 복잡합니다.”
    “허허!”
  관웅은 혀를 차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감한 상황이
  었다.
    “우리가 증거까지 제공한 셈이 아닙니까?”
    민은 옆에 선 조우충을 흘겨보며 말했다.
  “일부 관인을 찍어 위임해준 주인들 외에 먼곳에 살거나 연
  락이 잘되지 않는 작자들의 관인을 복제하여 날인한 것은 관행
  적으로 해온 일이거늘. 그것을 문제 삼다니. 필사본에 대한 직
  소권 전체를 독식하려는 것이냐?”
    관웅은 시선을 천정으로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개필부의 금천상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않습니까?”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관웅에게 조우충이 말했다.
    “조우충!”
    “…….”
  조우충은 자신을 큰 소리로 부르는 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네놈의 잔대가리가 결국은 화를 부르는구나!”
  “민! 너도 이제까지 조용히 앉아서 그 이득을 챙기지 않았더
  냐? 오백국이나 타락국에 있는 소수의 비급 주인들에게까지 어
  떻게 관인을 받는단 말이더냐?”
  “네, 이놈! 정도를 걸었어야지. 송사가 아니더냐! 그리고 오백
  국이나 타락국 뿐만 아니라 가까이 만국이나 심지어 개필부에
  에 있는 비급 주인에게도 위임장을 받지 않았지 않느냐?”
    “그건 일부일 뿐이다.”
    조우충이 주먹을 쥐어 진기를 밀어 넣었다.
    “일부라도 이놈아!”
  민은 두 손을 모아 단전 앞으로 가져갔다. 두 사람의 기세가
  바뀌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곧 출수하면 서로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기세로 돌변하
  고 있었다.
    “조용히 해라!”
    슈아악.
  막 권과 장을 날리며 싸움이라도 벌이려는 민과 조우충을 향
  해 관웅이 웅심팔보력이라는 사심 가득한 기운을 펼쳐내어 살
  기를 전하였다.
    터터턱.
  웅심팔보력을 받은 둘은 각기 두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웅심
  팔보력을 받기에는 민과 조우충의 내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이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 와서 개수작을 부리다니, 금
  천상 이놈!”
    내력을 거두며 관웅이 말했다.
  “금천상이 비급의 주인들을 끌어 모을 때부터 이미 작정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입술에 혈흔을 가늘게 베어 물고 있는 민이 말했다. 겉보기에
  는 이상이 없었으나 사심 가득한 웅심팔보력의 기운에 내상을
  당한 듯 했다.
  “어찌한단 말이냐? 이미 저들에게 증거까지 우리 손으로 넘
  겨준 마당이 아니더냐?”
    관웅이 둘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배당금을 주려고 알렸으니 그것으로 모든 증거
  를 우리 손으로 넘긴 것이나 다름없사옵니다.”
    민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방법을 찾아라!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아!”
    노기가 가득한 음성으로 관웅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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